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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뉴스1) 김도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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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nion   댓글: 0   조회수: 109 날짜: 202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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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뉴스1) 김도우 기자 = 20일 경남 산청군 생비량면 상능마을이 지난 19일 폭우로 인한 산사태가 발생해 마을에 토사가 쌓여 있다. 2025.7.20/뉴스1 20일 오전 경남 산청군 산청읍 부리 내부마을. 마을은 그야말로 쑥대밭이었다. 이곳엔 전날 밤 시간당 100㎜에 달하는 ‘물 폭탄’이 쏟아졌다. 주민 3명이 산사태로 숨졌다. 현장은 흙더미뿐이었다. 집은 형체도 없었다. 대신 집채만 한 바위가 뒹굴었다. 전신주도 쓰러졌다. 비는 그쳤지만 흙탕물이 폭포수처럼 콸콸 흘러내렸다.산청엔 지난 16일 이후 닷새간 전국에서 가장 많은 793.5㎜ 폭우가 쏟아졌다. 작년 한 해 내린 강수량의 절반 이상이 닷새 만에 쏟아진 것이다. 피해도 제일 컸다. 산청에서만 10명이 숨지고 4명이 실종됐다. 지리산 자락에 있는 산청은 골짜기가 깊고 가팔라 산사태 피해가 특히 컸다. 산청군 관계자는 “지난 3월 산불로 입은 상처를 채 치유하기도 전에 또 화를 당했다”며 “군 전체가 초상집”이라고 했다. 지난 3월엔 지리산 자락인 산청군 시천면 일대가 산불 피해를 당했는데 이번엔 산청읍 일대가 수해를 당했다.주민 최모(92)씨는 “‘우우우’ 하며 땅이 울리다가 산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졌는데 아흔 넘게 살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했다. 3년 전 귀촌한 노명수(70)씨는 가까스로 살아남았다고 했다. 그는 “거대한 산이 내 앞으로 밀려오는 느낌이었다”며 “집 근처 둑 위로 피해 겨우 살았다”고 했다.숨진 10명 중 2명은 부부였다. 전날 밤 소를 돌보러 갔다가 흙더미에 매몰됐다. 김광만(61) 이장은 “마을에서 제일 금슬 좋은 부부였는데 안타깝다”고 했다.산림청은 산불이 난 시천면 일대는 ‘산사태 취약 지역’으로 지정해 관리했지만 산청읍 일대는 취약 지역에서 빠졌다. 이 때문에 주민 대피가 늦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오전 경남 산청군 산청읍 부리. 산사태로 마을이 매몰되면서 희생자가 발생했다./2025.7.20. 김영근 기자 행정안전 힐마 아프 클린트가 1907년 그린 대형 추상화 10점이 드넓은 전시장에 나란히 걸렸다. 원·나선·곡선 같은 형상, 상징 기호와 대칭 구조를 통해 인간 생애를 네 단계로 나눠 표현한 연작이다. 높이 3m 넘는 대작 열 점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허윤희 기자 1944년 세 명의 추상화가가 세상을 떠났다. 바실리 칸딘스키, 피터르 몬드리안, 그리고 힐마 아프 클린트.추상 미술의 선구자로 알려진 칸딘스키나 빨랑·파랑·노랑의 삼원색으로 유명한 몬드리안과 달리, 마지막 화가는 불과 몇 년 전까지 대중에게 생소한 이름이었다. 칸딘스키가 처음 추상화를 그렸다고 알려진 1911년보다 5년 앞서 추상화를 그린 스웨덴의 여성 화가. 자신의 작품이 이해받지 못할 것을 안 힐마는 “내가 죽은 후 20년 동안 작품을 공개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봉인됐던 1300여 점의 그림과 2만6000쪽의 노트는 21세기에 이르러서야 대규모 회고전을 통해 조명받기 시작했다. 미술사를 다시 써야 할 타임캡슐이 100여 년 만에 열린 것이다. 5인회, '무제'. 1908년 2월 5일, 종이에 드라이 파스텔, 흑연, 53×62 cm. 힐마는 1896년 여성 4명과 함께 영적 모임이자 공동체인 '5인회'를 결성했다. /부산현대미술관 묻혀 있던 최초의 추상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1862~1944)가 부산에 왔다. 부산현대미술관에서 국내 최초 대규모 회고전 ‘힐마 아프 클린트: 적절한 소환’이 19일 개막했다. 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서 지난달 15일 폐막 후 부산으로 이어지는 아시아 첫 순회전이다. 힐마 아프 클린트의 주요 회화 연작을 중심으로 드로잉, 기록 자료 등 총 139점을 선보인다.전시는 연대기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작가의 사유와 질문을 따라간다. 1862년 스톡홀름 근교에서 태어난 힐마는 당시 여성으로는 이례적으로 스웨덴 왕립미술학교에서 정식 미술 교육을 받았다. 초기엔 식물과 동물, 초상화, 풍경화를 그렸으나 서서히 형상이 없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힐마는 당시 유럽 지식인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신지학(神智學)에 심취해 있었다. 신지학은 과학의 발전에 영향을 받아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탐구하고자 했던 사상 체계로, 힐마의 작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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