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소설가 조르주 페렉(1936~1982). 소설 ‘사물들’로 1965년 데뷔했다. 1960년대 전위 문학 단체에서 활동한 이래, 매우 실험적인 글쓰기로 40여편의 작품을 남겼고, 20세기 후반 현대 문학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계단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던가? 침대에 대해서는? 살고 싶은 집이나 걷고 싶은 거리를 떠올려본 적은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내 욕망의 형태가 아니었던가. 공간을 생각한다는 것, 또 공간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질문이 이어진다. 종이 한장이 가득 채워진다.
기록과 나열, 목록으로 이뤄진 조르주 페렉의 글을 읽다 보면, 그의 방식으로 창조된 하나의 공간을 갖게 된다. 질문이 이어지는 페이지. 페렉의야마토카지노
분류법 안에서 페이지는 하나의 공간이다. 상하, 좌우, 앞면과 뒷면이 있는 세계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문장에는 중력과 질서가 있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단어들에는 시간의 축적이 있다. 장을 넘기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교대하고, 제본선은 경계이자 축이며, 각주는 잠시 돌아가는 길이다. 페렉은 종이 안에 담긴 방향과 중력, 균형을 의식낙폭과대우량주
적으로 드러내며, 글을 쓰는 행위가 곧 공간을 만드는 일임을 보여준다. 그에게 한장의 종이는 독자가 걸어 들어가 머물고 건너가는 작은 세계다.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글쓰기로 알려진 조르주 페렉은 1965년 ‘사물들’로 문단에 등장했다. 그는 이 소설에서 1960년대 소비사회를 살아가는 젊은 프랑스인들의 욕망을 감정이 아닌 방의 구조와 사물의이니텍 주식
배열로 그려낸다. 소설의 표면에는 젊은이들의 초상이 있지만, 더 깊은 층에는 소유된 사물과 공간이 인간을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묻는 목소리가 있다. 이곳에서는 욕망의 방향이 이동의 방향이며, 그 이동이 곧 서사가 된다.
첫 소설로 르노도상을 받은 페렉은 이후 자신이 속한 공간을 직접 탐구한다. 그의 시선은 페이지에서 침대, 방, 건물, 거신 천지 게임
리, 도시, 나라, 세계로 확장된다. 그는 서사를 짓는 대신에 공간 자체를 관찰하고, 분류하며 기록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의 글은 지극히 무미건조하고 얼핏 정보들의 집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여기에는 흥미로운 원칙이 있다. 가장 평범하고 사소한 것을 다룰 것. 그의 글쓰기는 익숙한 것에 질문을 던지며 관습적 사고와 인식의 무감각에서 벗어나 일상을 새롭게 바주식챠트공부
라보고자 했다.
페렉은 지나치게 비범한 것에만 주목하는 습관을 경계했다. 세계를 이루고 있는 대부분은 너무 익숙해서 보이지 않는 것들인데, 정작 그 중요한 것들이 언어의 바깥으로 내몰려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진짜 요소들, 그의 표현을 빌려 ‘보통 이하의 것’들을 재인식하고, 기록하고자 했다.



사물들 l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웅진지식하우스(2024)


예로, 페렉이 ‘공간의 종류들’에서 다룬 ‘방’을 살펴보자. 그는 자신이 살면서 머물렀던 모든 방을 나열한다. ‘나의 방’, ‘공동 침실들’, ‘친구의 방’, ‘호텔방’, ‘우연한 잠자리’ 등. 그는 그 방들에 품고 있는 감정이 아닌 위치와 배치의 기억을 기록했다. 오른쪽에 창문이 있거나 벽에 붙어 있는 침대처럼 사소한 세부를 되살려 공간의 구조를 복원한 것이다. 그에게 ‘방’은 추억의 무대가 아니라 기억이 작동하는 구조물이었고, 동시에 ‘공간에서 산다’는 의미에 관한 질문이기도 했다. 공간에 산다는 것은 단순한 점유가 아니라, 그곳을 인식하고, 자기 경험의 일부로 만드는 일이다. 페렉이 머물렀던 방들 역시 그의 사소한 몸짓과 사물들의 기억을 품고 있다. 일상의 순간들부터 그의 물건들, 그가 공간에 남긴 시간의 잔재들까지. 어쩌면 산다는 것은 자신의 시간을 공간에 새기며 존재를 확장해나가는 일이 아닐까. 당신이 살았던 방들을 떠올려보자. 작은 몸짓 하나로 그곳이 당신만의 공간이 되었던 순간을 기억해보자. 방과 방을 이어보자. 그것이 바로 당신이 살아온 궤적이다.
흥미로운 것은 페렉이 방을 공간이 아니라 ‘장소’로 분류했다는 점이다. 지리학자 이푸 투안에 따르면, 공간은 아직 구체적인 의미나 경험이 부여되지 않은 상태의 넓은 여백이고, 장소는 경험과 기억이 쌓여 의미가 생긴 공간이다. 그렇다면 페렉의 글쓰기는 하나의 공간에 시간과 기억을 입혀 살아 있는 장소로 바꾸는 일이 아니었을까.
페렉이 오랫동안 진행했던 ‘장소들’ 프로젝트는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1969년부터 파리의 열두곳을 골라 해마다 각 장소를 두번씩 기록했는데, 한번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썼고, 또 한번은 그곳을 실제로 방문해 묘사했다. 그렇게 하나의 ‘기억의 지도’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이 작업은 안타깝게도 1982년, 페렉이 세상을 떠나면서 미완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가 남긴 기록은 사후에 유고작으로 출간되어 기억의 단위로서 장소를 쓰는 일, 글이라는 임시 거처에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아두려 했던 그의 시도를 증언한다.
페렉의 글쓰기는 상실과 부재의 구멍이 아니라, 남아 있는 형체를 담고자 했다. 유대계 폴란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전쟁터에서 아버지를, 아우슈비츠에서 어머니를 잃고 고아로 자란 그에게 그것은 너무도 절실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는 붙잡고 싶은 것을 바라봤고, 기록했고, 그렇게 기억의 거주지를 만들었다.
페렉은 “산다는 것은 최대한 부딪치지 않으려 애쓰면서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끊임없이 이동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삶은 임시적 정착과 이동의 반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동하는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누군가의 기억이고, 그 기억이 저장된 공간은 존재의 시간이 쌓이는 장소가 된다. 시간이 삶의 다른 이름이라면, 문학은 한 인간이 세상 속에 머무는 방식, 즉 거주의 예술이 아닐까.
페렉의 책을 펼치며 ‘읽다’라는 동사 대신에 ‘살다’라는 말을 써보자. 그의 문장들을 살아보자. 이제 페렉의 문학은 하나의 장소가 된다. 그곳에 쌓은 시간은 오롯이 당신의 것, 당신만의 기억이 될 것이다.
신유진 작가·번역가



신유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