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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 박동미 기자
보름달 아래 다보탑과 석가탑이 고요한 우물에 비친다. 성모마리아와 마주한 관세음보살상이 조용히 무언가 말하려는 듯하다. 그리고 백록담과 천지까지 한반도의 아름다움을 품은 거대한 벽화에 경탄하고,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먼저 보고 간 백남준의 따스한 인류애를 느낀다….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를 앞두고, 경주가 한국미술 발신의 최전선이자, 소통의 장으로 변모했다. 솔거미술관에서는 신라의 불교 미학을에피밸리 주식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4인전이, 우양미술관에서는 백남준이 꿈꿨던 세계가 현재적 시선을 입고 펼쳐진다. ‘지속 가능한 내일’을 예술적 언어로 확장한 두 특별전시 앞에 서게 될 각국 정상들의 표정이 궁금해진다.



송천 스님의 ‘관음과 마리아-진리는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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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마리아 그리는 스님·경주 대표 작가 박대성… 신라가 꿈꿨던 세계 속으로 =솔거미술관에서는 한국, 그리고 경주를 대표하는 전통문화유산을 소재로 한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22일 개막해 내년 4월 26일까지 열리는 특별전 ‘신라한향 : 신라에서 펼쳐지는 한국의 향기’다. 문화체육관광릴게임야마토
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 주최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APEC 핵심 의제인 ‘지속 가능한 발전’을 신라 문화와 불교 세계관으로 재해석했다.
전시에선 한국화 거장이자 경주 대표 작가인 박대성 화백이 우리의 전통 도상과 자연미를 결합해 완성한 대형 수묵화 ‘코리아판타지’가 공개된다. 가로 15m에 이르는 작품은 기와·불상·도자기뿐만 아니라 백두산 통큰증권방송
천지와 한라산 백록담, 그리고 금강산의 무수한 봉우리까지 담아냈다. 지난해 부산비엔날레에서 ‘성모 마리아 그리는 스님’으로 화제몰이했던 송천 스님이 이번에도 불화 기법으로 그린 신작 ‘관음과 마리아―진리는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다’를 출품했다. 한층 밝아진 색감과 과감해진 차림새가 경주의 도약을 발원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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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화 대가 박대성 화백의 ‘코리아판타지’. 가로 15ｍ·세로 5ｍ의 초대형 신작이다.


이와 함께, 전통 회화 수복 전문가인 김민 작가가 석굴암 본존불 등을 전통 회화 기법으로 만든 ‘적연명(寂然明)’을, 폐유리 작업을 이어온 유리 공예가 박선민 작가는 설치 작품 ‘시간의 연결성’을 선보인다. ‘심상, 융합, 진리, 원융’이라는 네 가지 주제를 따라 4명의 작가가 창조한 세계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려고 했던 신라인들의 마음속을 거니는 듯하다.
◇30년 만에 나온 작품·기술에 깃든 인류애… 백남준이 먼저 다녀간 ‘미래’를 사유하라 =우양미술관에선 한국 출신 세계적인 비디오아트 작가 백남준의 소장품을 대거 공개했다. 내달 30일까지 열리는 특별전 ‘백남준 : 휴머니티 인 더 서키츠(Humanity in the Circuits)’다. 생전 스스로 “나는 미래에서 온 무당”이라고 말했던 백남준의 선견지명적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데, 특히 수리·복원을 거쳐 30여 년 만에 일반에 공개되는 ‘나의 파우스트-경제학’과 ‘나의 파우스트-영혼성’이 눈길을 끈다.



경주에서 출토된 기마인물형 토기를 재해석한 백남준의 ‘고대기마인상’(1991).


‘나의 파우스트’는 1989∼1991년에 13점이 만들어진 백남준의 대표 연작이다. 독일 문호 괴테의 고전을 바탕으로 자본, 윤리, 시간, 존재라는 주제를 동서양 철학과 기술적 상상력으로 교차시킨 작품이다.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13점이 한꺼번에 공개된 이후 기관, 개인 소장자에 의해 뿔뿔이 흩어졌다. 우양미술관이 소장한 ‘경제학’은 자본과 인간 가치의 충돌을 형상화했으며, ‘영혼성’은 기술의 유한성 속에서 기억과 정신이 지속될 가능성을 탐색한다. 일찌감치 백남준이 던졌던, ‘기술이 만든 세상 속에서, 예술은 어떻게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더 중대하고 첨예한 화두가 돼 2025년의 우리를 향한다. 백남준의 기술과 철학이 어떻게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전시는 1980∼1990년대 작품이 대부분이다. 백남준이 예술적 전환기를 맞이하던 때다. 당시 그는 자동차, 텔레비전, 라디오 등 여러 기술 매체를 재료로 인간과 세계를 탐구했다. 인터넷 시대를 예견한 듯한 ‘전자초고속도로-1929 포드’는 1929년식 포드 자동차 위에 나무로 만든 전통 가마가 얹혀져 있다. 1991년 미술관 설립을 기념해 제작된 ‘고대기마인상’은 비디오 짐 꾸러미를 이고 힘차게 달리는 말을 형상화했다. 기술의 회로 속에 백남준이 새겨 넣은 인류애의 흔적이 읽힌다. 그가 다녀간 미래인 지금, 인간은 기술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되고 있으며, 빠른 정보 전달력이 새로운 지배 질서를 만드는 세계를 살고 있으니까.
이와 함께, 전시에선 백남준의 판화 제작 실무자였던 마크 패츠폴의 판화 컬렉션도 만날 수 있다.
박동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