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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고석, ‘범일동 풍경’, 1951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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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디 좁은 대지에다 여러 식구들이 살아야겠고, 일하는 방도 있어야겠다는 한 끝 부푸리기만 하는 욕심은 위로 자라서 결국은 명색 삼층을 짓고 말았다. 이층 지붕 위에 또 한 층 감투처럼 올리는 것이 두 평 가량 되는 나의 피난 화방이다.”

한묵은 한국전쟁으로 인한 부산 피란 시절 이른바 원익IPS 주식
‘하꼬방’(판자집)을 작업실로 개조했다며 1953년 이같이 적었다. 전쟁의 참상을 온몸으로 겪은 그는 생계를 위해 여러 일을 병행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한묵과 마찬가지로 예술가이자 가장이었던 작가들이 서울로 돌아와 새로운 연대를 결성했다. 한묵을 비롯해 박고석, 유영국, 이규상, 황염수 등이 중심이 된 ‘모던아트협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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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 청주관은 내년 3월 8일까지 ‘조우, 모던아트협회 1957-1960’전 통해 이들이 남긴 짧지만 깊은 발자취를 조명한다. 모던아트협회는 4년 동안 여섯 차례 전시를 열며 창작·비평·전시를 병행했다. 이들은 당시 미술계의 주류였던 국전의 사실주의 아카데미즘을 거부했다. 동시에 앵포르멜의 급진성을 넘어 한국적 추상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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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묵의 ‘모자’(1954). <정유정 기자>



이들의 화폭에는 전쟁의 비극과 함께 다시 살아가려는 의지가 공존한다. 한묵의 ‘모자’는 다리를 잃은엄마를 아이가 지탱하는 모습을 그렸다. 박고석 ‘범일동 풍경’은 부산 범일동 철길을 따라 걸어가는 피난민의 모습을 담담히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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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의 ‘교회’(1955)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이후 협회에 합류한 정점식, 문신, 정규, 김경, 임완규, 천경자의 작품도 선보인다. 전후의 현실을 그리던 화가들은 점차 삶의 장면을 추상적 언어로 전환한다. 정규의 ‘교회’, 유영국의 ‘물고기’는 구상적 형태를 단순화했다. 정점식의 ‘실루엣’은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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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상의 ‘작품 A’(1960),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이규상의 ‘작품 A’는기하학적 구성 속에 종교적 상징을 녹여냈다. 문신의 ‘소’도 작가가 구상으로 추상으로 이행하던 시기를 보여주며, 임완규의 ‘황’은 그가 반추상에서 완전한 추상으로 나아가는 전환기에 그린 작품이다. 천경자는 추상과는 멀지만 풍부한 색채와 상징적인 인물 표현으로 협회의 스펙트럼을 확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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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국의 ‘새벽’(1966),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정유정 기자>



이번 전시에서는 유영국의 ‘새벽’이 처음으로 공개되며 김경의 ‘조우’와 ‘저립’, 황염수의 50년대 작품 다수도 최초로 전시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효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모던아트협회의 특징은 포용성과 개방성”이라며 “이들은 특정한 양식을 강제하지 않았고 구상과 추상, 표현주의와 절대 추상을 모두 아우르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허용했다”고 말했다.
이어 “결과적으로 각 작가의 개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건강한 토양이 마련됐고, 협회의 활동은 한국 현대 미술이 독자적 모더니즘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