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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진 전북지사님이 3선을 준비하신다. 경선에서 이기려면 권리당원선거인단을 확보해야 하는데, 권리당원을 모집해 주고, 당원 명부를 받아서 전달해달라. 이게 '오더'다."
전북자원봉사센터 협력사업처장을 지낸 A씨는 지난 2021년 2월 전북도청 정책보좌관을 지낸 B씨에게서 권리당원 모집 지시를 받고, 알고 지내던 단체장들에게 '오더'를 일사불란하게 전했다. A씨가 몸담은 센터는 전북지사의 위탁에 따라 운영되는 곳으로 매년 24억 원가량의 사업비·운영비를 도에서 지원받는다. 이들이 투자상품
현직 지사의 당선에 목을 맨 배경이다.
이들을 포함해 송 전 지사 부인과 전현직 전북도 공무원 십여 명은 각각 수십에서 수백 명에 이르는 권리당원을 모집한 뒤 당내 경선에서 활용할 목적으로 1만여 명의 당원 명부를 센터에서 정리·관리했다. 판결문엔 "좀 해서 한 1,000여 장 정도 만들어", "지사님 3선 준비하거든, 당원 명부 1차적손오공
으로 12월까지 걷고, 최대한 해 가지고", "12월까지 1,000장 정도 우선적으로 하고" 등 각종 편법을 동원해 당원 명부를 허위로 만드는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로 포장된 멍든 정당 민주주의의 민낯이다.
한국의 정당 가입자 1,000만 명 시대(2023년 기준 1,120만1374명). 유권자 4명 중 1명이 당업종대표주
원의 자격을 보유할 만큼 정당 민주주의는 양적으로 활성화됐지만, 당원 모집과 관리에 있어 조직적으로 동원된 불법이 활개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당원이 정당의 주인이라는 '당원 주권시대'라는 말이 무색하게 애당초 자신도 모르게 당원으로 가입된 '유령 당원'이 넘쳐나는 것이다.
특히 대선·총선·지방선거 등 주요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과 결탁한모바일릴게임
이익집단이 대규모 '당원 매집'에 나서는 일은 더욱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정치인은 돈과 조직을 앞세워 매수한 당원을 등에 업고 선거에 유리하게 활용하고, 특정 이익집단은 당원을 '조달'해 준 대가로 민원 해결 등 자리나 이권으로 보상받는 공생관계가 구축되기 때문이다. 선거 때마다 "결국엔 조직 싸움", "당원을 얼마나 모으느냐에 승패가 갈린다"는 얘기가 주식시장분석
여의도에서 나오는 이유다.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낸 한 정치권 출신 인사는 "지방선거가 다가오면 권리·책임당원을 모으는 건 너무 흔한 일"이라며 "주소지와 상관없이 일단 모은 뒤 필요에 따라 주소지를 기입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보좌관 출신 인사도 "가족, 지인, 지인의 지인까지 최대한 모으고, 모자라면 실적을 채우려고 중복 보고하는 경우도 잦다"며 "좋은 정책 공약을 설계하는 것보다, 당원 머릿수 채우는 게 당선의 지름길"이라고 설명했다.
앞선 사례처럼 정치 중립 의무를 지켜야 할 공무원들이 앞장서는 경우도 있지만 최근엔 특정 종교 집단까지 '당원 장사'에 뛰어들고 있다. 2021년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 개입했단 의혹을 받는 통일교 사례나 최근 종교단체 신도 3,000여 명의 당비를 대납하려 했단 의혹을 받는 김경 전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 논란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역시 집단적으로 신도들의 당비를 대납해 통째로 당원 명부를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넘기는 수법으로 개입했단 의혹을 받는다.
당원 모집책으로 종교 집단이 각광받는 이유는 △전국 단위 대규모 모집이 가능하고 △폐쇄적인 신앙공동체 특성상 정치적 동원력이 용이하다는 점이 꼽힌다. 그러나 정치적 목적이 개입된 종교 단체의 무더기 당원 가입은 그 자체로 헌법에서 보장한 정교 분리 원칙(헌법 제20조,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위배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국민의힘 당원 가입 운동과 더불어 공천권 폐지 및 당원 중심의 후보자 경선을 주장한 것도 대표적인 사례다. 국민의힘 내부엔 "전씨 영향력이 닿는 당원이 몇 명인지 추산하기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통일교 11만·신천지 10만·전광훈 세력 등을 합치면 그 당(국민의힘)은 유사 종교집단 교주들에게 지배당한 정당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할 정도다.
무리한 당원 모집 탓에 불법도 판을 치고 있다. 민주당 소속인 현직 서울 중랑구의원 고모씨도 최근 업무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는데,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권리당원 당비 납부 약정이 포함된 지역당원 입당원서를 모집하면서 허위로 주소지를 기재한 혐의다. 당시 고씨는 이 지역구 국회의원 의원실의 선임비서관으로 내정된 상태였다.
당원 대상 불법 행위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으로 당선된 C씨는 자신이 카카오톡 등을 통해 관리하던 당원들에게 '이중투표'를 권유한 혐의로 벌금 90만 원을 선고받았다. 통상 일반인 대상 선거인단 투표 전화에서 권리당원이라고 응답하면 배제되는데, 수십 명의 권리당원들에게 권리당원이 아니라고 답하도록 해 '이중투표'를 유도한 혐의다. 단체대화방에선 "어제는 11시 반경부터 시작~ 긴장들 하세요~ 점심시간 폰 껴안고 식사하세요. 우리 모두는 권리당원 아닙니다~" 등 투표 시간대까지 노골적으로 알려준 정황도 드러난다.
'당비 대납'으로 의심되는 사건도 있다. 지방공기업의 상근임원인 A씨는 2021년 3월 특정 지자체장 당선을 위해 권리당원을 모집했고, 입당원서를 작성해 준 지인 18명에게 각 3만 원씩 54만 원을 준 혐의로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특정 기관의 지방 이전을 막기 위해 해당 기관 직원들이 대거 당원으로 가입해 "경선에서 떨어뜨리겠다"고 협박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암암리에 자행된 '당원 장사'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지만 주요 정당은 '몸집 부풀리기'에만 치중할 뿐, 중앙당 차원의 체계적인 관리 책임에는 손을 놓고 있다. 한 국민의힘 당협위원장은 "당원이 사망해도 걸러낼 마땅한 방법도 없다"며 "당원 내실화 작업을 하면, 당원 수가 줄어드는데 중앙당으로서 독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당원의 책임성, 정치적 소양을 키우기 위한 당원교육도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각 정당별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개 연 1회 남짓 당원교육을 실시하는데 체계적인 커리큘럼은 없다. 한 정당 관계자는 "정치권 관계자를 불러다가 한두 시간 강연을 하는 게 전부"라며 "사실상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김도형 기자 namu@hankookilbo.com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허유정 기자 yjheo@hankookilbo.com